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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단상] 만나자. 무조건 만나자

- 김예명 관찰과상상력 대표 -
2013. 06.06(목) 10:41확대축소
[살림단상 칼럼니스트. 김예명/관찰과상상력 대표]
[김예명 관찰과상상력 대표] 중년이 된 여인이 몸에 장신구 하나 걸치지 않은 경우는 드물다.


내 몸을 아름답게 치장하기 위해서라고 간결하게 이유를 말할 수도 있지만, 얼굴과 목, 손에 주름이 잡히면서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지면 귀고리도 하고 싶고 목걸이도 하고 싶고 알 박힌 반지도 하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것은 또한 내가 이만큼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 정도도 하나 못해?하는 오기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금속 공예를 전공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돋보였다. 주로 은을 소재로 귀고리, 목걸이, 반지, 팔찌, 브로치 등을 만드는 그녀는 자기에게 어울리는 장신구들을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알았다. 깔끔하게 정리된 작업실에서 나로서는 처음 보는 도구들로 장신구를 만드는 그녀의 모습은 정숙한 매력이 있었다.


그런데 발길이 잦아지면서 새로 발견한 그녀의 모습이 있었으니, 그녀가 별로 웃지를 않는다는 것이고 머리는 처음 본 그대로 늘 숏 컷트며 '나는 그런 게 싫어.'와 같은 부정적인 표현을 자주 쓴다는 점이었다. 옷도 주로 흰색, 검정색, 파랑색 위주로만 입었다. 어느 날 내가 진분홍색 운동복 차림으로 작업실을 들렀더니 머리가 어지럽다고 할 정도로 그녀의 색감은 편협했다.


그녀의 장신구들만큼 화사한 아름다움이 그녀에겐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서 고독의 냄새를 맡기 시작할 무렵부터 술자리를 함께 할 만큼 친분이 생기자 나는 비로소 알게 됐다. 남편하고는 말하기가 싫어요. 각 방을 쓴 지 오래 됐어요. 내가 그 인간 때문에 참고 살아온 게 억울해요...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치장을 위해 장신구를 만들며 지극한 몰입을 할 줄 알았던 그녀였지만 정작 남편하고는 고립된 사이라고 했다.


그리고 최근 그녀는 유방암 판정을 받고 말았다. 애써 의연한 척, 태연한 척 하며 그녀는 작업실을 정리했고 긴 투병에 들어갔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 보다 딸의 가슴에 슬픔의 독을 남기게 되는 게 두렵다고 했다. 딸을 위해서 어떻게든 살아보겠노라 다짐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틀렸다. 누구를 위해 참고, 누구를 위해 살아야겠단 말인가. 그녀는 오로지 나 자신을 바라보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편안한 것, 내가 행복한 것들을 찾아나가야 한다. 나를 위해 살다가 죽을 때는 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질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이 위태로워졌다면 누군가를 위해 견디는 것은 한계가 있다. 표현하고 배설하지 못 한 내 마음은 꽉 막힌 밀폐 공간이 되어 언젠가는 유독 가스로 가득 찰 수밖에 없고 결국 폭발하고 말 것이다.


내 안에는 다양한 내가 있다고 했다. 성인이라 해도 그 마음 안에는 개구쟁이 같은 아이, 물고 빨면서 보살펴주는 엄마, 달콤한 사랑을 주는 애인, 함께 놀 수 있는 친구, 가르침을 주는 선생님 등 많은 인물이 들어 있다. 내 안의 이 다양한 인물들이 언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잘 헤아려 볼 일이다. 또한 내 안의 다양한 감정들을 적재적소에서 자유자재로 끄집어내어 표현할 일이다. 나 자신과 평화롭게 만나는 이 기술은 일찍 배울수록 나의 '숨통'이 된다.


우리는 인생길을 '시지프스의 형벌'에 비유하곤 한다. 기껏 산 위로 끌고 올라간 바윗돌은 올라간 순간 굴러 떨어지고 시지프스는 또 다시 끙끙대며 바윗돌 올리기를 반복하는 이 형벌. 산 위에 선 시지프스는 매 번 허무하다. 그래도 멈출 수 없는 반복의 고통. 프랑스의 실존주의 작가로 알려진 알베르 카뮈는 작품에서 이 시지프스의 형벌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한편에선 이런 주장을 했다. "인생은 부조리하다. 그러므로 자살하는 게 낫다." 여기에서 끝냈다면 카뮈가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유명한 작가는 아니 되었을 것이다. 이어서 그는 말했다. "죽음은 문제에 대한 도피다.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서 당당하게 세상과 대항해야 한다." 이것이 카뮈식 '반항'이다. 멋지지 않은가? 반항이 일탈이나 거부가 아니라 부조리한 세상과 한 판 '맞짱뜨기'라는 사실이. 시지프스의 형벌이 반복의 고통이 되지 않는 길도 여기에 있다. 허무해하지 않기. 산 위에 올려놓은 바윗돌이 다시 굴러 떨어진다 해도 굴려 올리는 그 과정에 의미를 두고 정상에 섰을 때 보람을 느낀다면? 더 이상 형벌일 리가 없지 않은가.


금속공예가인 그녀는 남편과의 오랜 갈등 속에서 스트레스가 심하다보니 유방암에 걸렸다고 짐작했다. 그녀는 그러한 갈등에 아무런 의미 부여도 못 했던 걸까? 부조리한 세상에서 나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미성숙한 성인끼리 만나 사는데 어떻게 순탄할 수가 있겠는가. 부부 각자가 나를 만나는 노력을 함께 했다면 몸속의 암세포에게 '반항'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니, 우리 이제 만나자. 무조건 만나자. 내 안의 다양한 인물들을. 내 마음을 바람과 공기가 통하는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보자.


[살림칼럼 글보기] http://blog.daum.net/yiwoosong/13483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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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임즈 편집국 hktime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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