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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항쟁 30주기] 광주전남'목정평'의 초기활동 기록 공개
2017. 04.30(일) 13:00확대축소
[1987년 당시 목정평의 단식현장인 광주YWCA 현장으로 찾아온 서방 외신 취재진들에 둘러싸여 입장을 밝히는 이우송 신부(붉은색 원)와 김병균 목사.사진출처:살림문화재단]
[이우송 살림문화재단 이사장/다석채플 사제(성공회)] 이 글은 지난 2013년 살림문화재단 블로그에 올렸던 '1987년 6월항쟁 시절 목회자운동의 기록'을 올해 6월항쟁 30주기를 맞아 다시 일부 수정보완해 정리한 글임을 밝힌다.

['87년 6월항쟁 30주기를 맞이한 광주전남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의 초기활동 기록]

'87년 전두환군부독재 시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직선제개헌 요구를 거부하는 이른바 '4.13 호헌조치'를 발표한 후 즉각 거센 반대여론을 불러 일으키면서도 며칠간은 오히려 거짓말 같이 잠잠했고 충격은 섬뜩했다.

4월 14일 전국 '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이하 목정평)'가 '영구집권을 위한 4.13발언에 대한 기독교성직자의 입장'을 발표한다.
[4.14 전국 목정평 성명(자료사진1)]

정국의 위기를 직감한 광주NCC인권위 총무 이우송 신부가 4.16 상경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선교훈련원(오재식 원장)을 찾아 차선각 목사(당시부장)를 만나서 '4.13호헌조치는 방관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인식을 함께하고, 광주전남목정평의 재건과 프로그램을 위하여 50%의 재정지원을 협의했다. 또한 강사로 문동환 교수를 선임하는데까지 협조를 구하고 광주에 돌아온다.

당시 필자는 광주목정평 문기전 임시간사와 함께 천주교 '젊음의 집'을 목정평 세미나장소로 계약하고 전남목정평 회장인 김현삼 목사와 함께 광주전남 목정평 재건조직의 회복을 논의했다. 전남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는 정등룡 목사와 전도사를 포함한 젊은 목회자를 중심으로 단시일 내에 광주 '젊음의 집'에서 4.24-4.27일까지 '호헌저지 및 직선제개헌을 주장하기 위한 목정평 연수계획'을 확정하고 광주전남 확대 재건모임을 준비했다.

이때가 오래전부터 활동해 오던 '전남목정평'에서 사실상의 '광주전남 목정평'으로의 명칭변경과 확대 재건총회에 해당되는 시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광주전남 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회장/고 김현삼 목사, 총무/김성룡 목사, 서기/이우송 신부) 회원41명(기장19, 예장통합19, 감리교2, 성공회1명)이 4.24-4.27일까지 3박4일에 걸쳐 광주 '젊음의 집'에서 4.13호헌철폐와 직선제개헌을 주제로 문동환 박사(한신대 교수)를 주강사로 모시고 목정평 연수를 마치고 27일 오전에 호헌철폐를 위한 새로운 결단을 하면서, 성명서를 기초하며 목정평의 차기 행보를 준비하게 됐다.

천주교는 이미 4월 21일부터 광주교구사제단 12명이 호헌저지 직선제개헌 단식을 시작하고 있었다.

전남목정평 회원들은 이미 호헌철폐를 위한 전국 최초의 목회자 단식기도회를 결정하고 단식에 돌입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지만, 문제는 예비단식 없이 준비되지 않은 위험한 장기단식과 숙박을 위한 준비된 공간이 없었다.

이를 두고 고민하던 중 문득 광주YWCA 김경천 총무님께 전화를 드려 사정을 말씀드리니 "목사님 신부님 아무 걱정 마시고 회관 5층으로 오십시오."라는 답을 듣고 고마워 할 겨를도 없이 염치불구하고 YWCA 5층(숙소)로 긴급 이동해 들어오게 되었는데, 목정평에서는 이후에도 비용을 지불한 기억이 안난다.

장시간의 토론을 거쳐 전날 밤에 준비된 성명서를 채택하면서 41명 가운데 김병균 목사를 비롯하여 광주전남 목정평 소속 27명의 성직자들은 그날 4월 27일부터 '성서적진리와 신앙양심에 따라' 즉시 단식투쟁에 돌입하기로 결정하고, 광주NCC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어 광주 YWCA 5층으로 올라가서 준비 없이 곧바로 무기한 단식에 돌입한다.
[성서적 진리와 신앙 양심에 따라 즉시 단식투쟁에 돌입하기로 결정하고, 광주NCC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성명서를 발표했다(자료사진2)]

동시에 한 두 언론사의 횡간을 더듬어야 겨우 몇줄의 단신기사를 찾거나 자체 소식지에 의존해야 하는 언로가 막힌 상황에서, 광주CBS 박용수 기자와 보도국의 실시간 심층보도는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했다. 더불어 서방세계의 외신들이 광주YWCA의 목정평 단식현장으로 몰려오기 시작하면서 독일의 고백교회와 영국을 비롯한 세계성공회, 그리고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인 WCC, 아시아교회협의회인 ACC로 뉴스가 타전되면서 한국의 반독재민주화투쟁은 월드뉴스의 머릿기사가 되기 시작했다.
[당시 목정평의 단식현장인 광주YWCA 현장으로 찾아온 서방 외신 취재진들에 둘러싸여 입장을 밝히는 이우송 신부(붉은색 원)와 김병균 목사(푸른색 원).사진출처:살림문화재단]

이때 광주YWCA 6층의 NCC인권위원회 사무실은 성직자 단식을 지원하고 대내외적 업무를 진행하는 최진호 NCC간사가 있었지만 시민홍보와 목정평을 위한 조력자가 필요해 전남대 졸업반인 문기전 학생을 자원봉사직 목정평 임시간사로 일해 줄 것을 부탁해 단식기간 내내 목정평 단식을 도왔다. 그는 후일에 YMCA의 실무자로 일하게 됐다.

광주전남의 많은 목회자들이 단식을 하는 동안 목회자가 속한 교인들의 애절한 기도와 지원은 단식기도에 임하는 분들에게 위로와 힘이되고 사민사회에는 그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동력이 됐으며 진보와 보수를 넘어 원로성직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함께하지 못한 일부 성직자들은 단식준비를 위해 집에 다녀와 속속 재결집하면서 단식 성직자의 숫자가 불어나는데 나중에는 KNCC성직자의 범주를 넘어 순복음교회를 비롯해 보수교단에까지 파급되어 단식 성직자의 수가 50명으로 늘어갔다. 나중에는 기독교공동대책위원회를 통해 광주전남 도내의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반독재민주화투쟁의 대열에서 함께하는 성과를 이뤄낸다.

예비단식 없이 진행된 단식의 과정 속에서 회장 김현삼 목사님께서 탈수로 쓰러져 병원으로 긴급이송이 되면서 다시 합류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했는데, 가까운 후일에 김현삼 회장이 지병으로 소천 하셨다. 그 원인은 죽음을 담보로 한 투쟁형 목회자단식에서 시발된 지병의 악화로 볼수 있다는 견해가 나왔다. 동지들은 깊이 동감했다. 이어 이동균 전도사 김성룡 목사 장헌권 전도사가 탈진해 차례로 병원으로 이송되면서 50여명의 목회자 중 단식기도 12일째까지 김현삼 회장을 포함한 12명의 목회자가 탈진, 병원으로 입원하게 됐으며, 합세한 성직자와 더불어 37명은 무사히 단식을 계속했다.

이어 5월 3일에는 7일째 계속되는 목정평 단식에 함께하지 못한 강신석, 문정식, 김경식 목사를 비롯해 전남기독교교회협의회와 광주기독교연합회의 원로 목사님들께서 NCC인권위 사무실을 방문 '젊은 목회자들의 단식기도를 지지하며'라는 성명서를 내면서 "미국은 한국민의 민주화운동을 방해하지 말 것"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음을 밝히며, 그간 우리 역사에 저질러 왔던 죄악들, 일본의 한국지배 승인, 민족분단, 독재정권 지원, 광주민중학살 승인 및 방조 등을 밝히며, 민주화운동을 방해하는 작태를 중지하라"고 밝혔다.(자료사진2)

4월 27일 단식기도에 들어가 이후 5월 8일까지 12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을 이어가던 중 서울에서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의장 이명남 목사, 허병섭, 장성룡, 이해학)의 지도부에서 긴급히 광주에 내려와 "단식을 중지해주시라. 이제 그만 서울의 전국목협에서 받겠다"는 뜻을 전했다. 단식뿐 아니라 삭발식도 함께 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와서. 광주전남 목정평의 단식은 12일만에 마무리하게 됐다.(자료사진3)
[(자료사진3) 12일간의 단식기도를 마치며 교회, 국민, 당시 정권에 보내는 성명서]
광주 전남지역의 성직자들은 3박4일 목정평연수를 포함해 주일예배를 거른 단식 15일만에 각자의 교회와 가정으로 돌아가 단식 후의 회복식을 통해 건강을 회복해 가면서 5월 10일(주일)에는 자기공동체의 교회신자들과 단식 성직자들이 함께 눈물겨운 예배를 드리면서 전면적으로 시민투쟁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는 '87년 6월항쟁을 견인해내는 광주전남목회자운동의 획기적인 기여라고 평가된다.

[전국으로 번져가는 목회자 단식기도 소식]
[1987년 당시 목정평 단식 등 관련 소식지]
[1987년 당시 목정평 단식 등 관련 소식지]

이후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의장 이명남 목사, 허병섭, 장성룡, 이해학) 목사 35명은 5월 6일 상오 9시부터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190-10 한국기독교장로회 선교교육원에서 전원이 삭발하고 '호헌저지 및 군부독재 퇴진을 위한 40명 전원 삭발단식기도'에 들어갔다.(경향1987. 5. 6 기사)

위의 기사와는 달리 호헌저지 및 군부독재 퇴진을 위한 '목회자 삭발 단식기도'는 삭발단식 5일째는 53명이 전원 삭발을 하면서 선교교육원은 주위에 경찰에 둘려쌓여 단식 성직자의 가족조차 만날 수 없었지만 단식기도회는 대전, 전주, 춘천, 청주, 부산, 인천 등지로 확대되면서 6월항쟁은 더욱 더 확대되고 있었다.

이 무렵 광주에서는 김병균 목사(광주전남목정평 회장), 정종득 목사, 장헌권 목사를 비롯해 단식을 끝낸 목정평의 젊은 성직자들은 신학생들과 교회신자들이 함께 가세하기 시작하면서 구호가 바뀌고 곳곳에서 번개집회를 통해 경찰들을 당혹케 했다.

결국 구호가 '4.13호헌철폐'와 '군사독재정권 즉각퇴진'으로 변하면서 5월 24일 도청과 금남로의 YMCA 앞에서는 광주NCC 6개교단을 포함한 보수교단들이 함께한 14개교단의 연합기도회가 열리면서 신자와 시민 3만여명이 참여하게 되는데, 시민과 학생들이 가세한 가운데 경찰들의 무자비한 최루탄(일명 지랄탄) 난사에도 불구하고 하얗게 뒤집어 쓴 체 꼼짝않고 견디어 낸 이후, 경찰도 놀랐고 시민, 학생들도 놀랐으며 시위는 확대되면서, '87년 광주의 6월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잠시 멈칫했던 국민들의 4.13 호헌 조치에 대한 반발도 이제 보수성이 강한 종단에서도 머리를 들기 시작하면서 비교적 보수적이던 기독교회 내에서까지 노골화되는 데에는 다소 시간이 걸렸으나 '광주기독교선교자유수호위원회'가 결성되면서 5월 24일에는 '시국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는데, 구세군 6명, 그리스도교 1명, 기성 15명, 기장 30명, 성공회 1명, 순복음 2명, 개혁 85명, 개혁 85명, 개혁 83명, 고신 5명, 통합 108명, 합동 34명, 호헌측 4명, 기독교성회 6명 등 총계 534명이 참여하는 열정을 보인다.

'4.13호헌 철회' '언론자유 보장' '양심수 석방' 등 6개항의 결의를 채택하는 등 탄력을 받기 시작한 이후의 광주전남에서 출발한 기독교운동세력은 서서히 전국화되어 변혁운동의 밀물이 되고 있었다.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통일민주당은 김태룡 대변인 발표의 '성직자 단식 격려 성명'에서, 29일 전남지역의 교직자와 서울지역의 신부들의 '호헌철폐 및 직선제개헌요구' 단식기도와 시국선언 발표에 대한 성명을 통해, 이같은 신부, 목사, 교수들의 애국충정에서 나온 고귀한 행위에 대해 '충심으로 경의를 표한다'고 말하며, 이들의 요구대로 속히 '4.13호헌선언'을 철회하고, 민주화 개헌 논의를 재개하라고 촉구한다.(동아'87. 4. 29 기사)

역사 속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영은 단식을 마친 영성의 목회자 성직단과 기독시민대중들에게 힘을 주시어 시간이 흐를수록 시위대와의 연대를 이뤄 대한민국의 모든 거리를 채워 나가게 됐다.

당시 경찰은 도심 일대를 완전 차단하고 일체의 시위를 봉쇄했으나 반민주 반독재투쟁의 현장에 주저앉아 최루탄과 속칭 '지랄탄'이 숨을 막는 현장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대중투쟁의 불을 붙이는 결과를 가져오는 기독교계가 일구어낸 기독운동의 쾌거가 아닐까 생각한다.

2017. 04. 30

[이 글의 필자 이우송 살림문화재단 이사장은 다석채플 신부(성공회)님이며, 본지 고문님임을 부기하다]

한국타임즈 편집국 hktime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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