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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허새롬의 'Movie 나들이' (5)

로마(2018 알폰소 쿠아론) "두 여인, 숨겨온 마음속 고통의 속살을 드러내다."
2019. 01.28(월) 11:02확대축소
[허새롬 영화평론가]
[영화 읽어주는 사람=허새롬 평론가] 언어가 아닌 그림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화처럼, 영화 '로마'는 시끄러운 소리가 아닌 작은 속삭임으로, 현란한 색채가 아닌 담백한 무채색으로, 물에 설탕이 녹아들어 가듯이 그렇게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

흑백으로 촬영된 영화 로마는 1970년대 멕시코시티의 '로마'라는 동네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엄마로 살아가는 소피아(마리나 데 타비라)와 유모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남편이 의사인 소피아는 어린 4남매(로뇨, 파코, 소피, 페페)를 양육하고 있는데 유모인 클레오와 그녀의 친구이자 동료 가정부인 아델라(낸시 가르시아)와 함께 아이들을 돌보고 살림을 꾸려가는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영화 초반, 소피아를 도와 미처 거울을 보지 못한 듯 길게 늘어뜨린 긴 머리칼을 지닌 클레오가 분주한 아침의 시작 신호에 따라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알콩달콩 잠에 빠져있는 아이들의 헝클어진 머리칼에 얼굴을 비벼대는 모습이 여느 가정집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가장인 남편 안토니오(페르난도 그레디아가)의 뒷바라지, 아이들의 등하교, 아이들의 방청소, 반려견 돌보기, 숨 돌릴 틈 없는 고단한 일상 속에서 소피아와 클레오는 서로에게 부여된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생화학을 전공했지만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소피아는 자신의 꿈을 포기한 대신 늘 남편의 사랑을 갈망하지만 잦은 출장으로 그녀에게 항상 뒷모습만을 보여주는 안토니오의 모습에서 곧 그녀에게 닥칠 불행을 쉽게 예견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출신과 주인과 유모라는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소피아와 클레오는 서로 우정을 나누며 살아가는데 두 사람 모두에게서 왠지 모를 슬픔과 상실의 아픔이 전해져온다.

영화 로마는 영화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자신의 유년시절을 함께한 입주 가정부 리보로드리게스를 모델로 한 자전적인 영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입주 가정부 클레오가 남의 말을 잘 믿고 순진한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소피아가 남편을 의지하듯이 클레오도 빈민가 출신 페르민(호르헤 안토니오 게레로)을 사랑으로 가슴에 안게 되는데 정작 페르민은 클레오의 임신사실을 알고 그녀에게 도망치면서 클레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남편의 잦은 출장이 다른 여자와 함께 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된 소피아, 민주화를 꿈꾸는 멕시코 국민들의 반항과 이를 탄압하려는 정부의 대결이 빚어낸 '성체 축일 대학살'이 벌어지던 날 유산을 하게 된 클레오, 두 여인은 동시에 비탄에 빠진다.

둘은 마치 자신의 속살을 드러낸 듯 상처를 가슴에 안고 아이들과 함께 바다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비로소 그들은 바다에서 서로의 고통을 대면하게 된다.

바닷가에서 소피아가 자리를 비운사이에 소피아의 아이들이 물에 빠지게 되는데 수영을 하지 못하는 클레오는 목숨을 걸고 아이들을 구해낸다.

아이들을 구해낸 클레오는 소피아에게 "나는 아이를 원치 않았어요, 원하지 않았어요." 자신과 아이를 버리고 떠난 페르민에 대한 울분을 토해낸다.

남편으로부터, 남자친구로부터 버림을 받은 두 여인은 남자들의 비겁함과 위선으로부터 서로를 구원하고 보듬어 안게 된다.

소피아는 클레오에게 "우리는 새로운 모험을 함께 하는 거야. 우리는 서로 아주 가까이..., 서로 뭉쳐야 해."라며 남자에게 의지하는 삶이 아닌 여자로서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비록 유모라는 다른 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클레오의 이타적인 삶이 보여주는 선한 의지와 그 내면에 숨겨진 분노의 이중적인 감정을 영화에 담아내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며 흐름과 고임을 반복하며 바위를 닳게 하듯이, 세상이라는 뾰족한 모서리에 입은 상처를 씻어내고 아물게 하는 것은 결국 내가 아닌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리라.

아주 오랜만에 접한 흑백영화에 시선을 편안하게 고정하고 여자로서, 엄마로서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한 영화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였다.

세상의 모든 소피아와 클레오에게, 그들 앞으로의 인생에 행운을 빌어본다.
[영화 '로마' 포스터]


한국타임즈 권차열 기자 chadol999@hanmail.net        한국타임즈 권차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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