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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허새롬의 'Movie 나들이' (11)

비포 선셋(2004년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비포 선셋(Before Sunset) 꿈이 아닌 현실의 사랑을 그리다.
2019. 04.08(월) 15:20확대축소
[허새롬 영화평론가]
[영화 읽어주는 사람=허새롬 평론가] 왈츠 한곡 들어볼래요?

가늘고 연약해 보이지만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기타, 그 아슬아슬한 기타줄 위에 손을 얹어 위태로운 연주를 들려주는 연주자가 바로 셀린(줄리 델피)이다.

영화 비포 선셋은 전작 비포 선라이즈(1995년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이후의 이야기를 다른 영화로 전작이 사랑의 낭만과 환상을 다룬 영화라면 후작인 비포 선셋은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 두 사람의 현실에 대한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비엔나에서 만난 두 사람의 짧은 사랑과 서로 어긋나 버린 6개월 후의 약속, 그리고 또 다시 9년이 지나버린 어느 날, 사랑의 도시 파리에서 어느덧 30대가 되어버린 두 사람의 인연은 또다시 시작된다.

셀린과의 사랑의 이야기를 책으로 발간해 작가가 된 제시, 운명의 신은 제시를 향해 셀린의 발걸음을 인도하는데, 셀린은 제시 앞에서 담담하게 그녀가 간직해온 지난 시간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준다.

셀린은 제시와 보낸 비엔나에서의 단 하룻밤의 사랑이 9년이란 시간 속에 함께 하고 있었음을 한 곡의 노래로 표현하는데 셀린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듣는 제시의 표정에서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지난 긴 시간동안 셀린에게도 잠시 마음을 흔드는 사랑이 있었지만 그 사랑을 품에 안은 순간에도 제시를 상상할 만큼, 제시를 향한 그녀의 마음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무심하게 지난 시간을 그에게 담담하게 들려준다.

네 살배기 아들과 유능한 부인을 둔 성공한 작가인 제시, 그도 셀린과 보낸 비엔나에서의 하룻밤의 소중한 인연을 잊지 못해 소설을 발간했으니..., 당장 그녀에게 성큼 다가서지 못하는 그의 사랑도 셀린에게 향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사실 제시도 자신의 소설이 널리 알려지면 언젠가 작가와 독자의 모습으로 셀린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작은 희망을 마음에 품고 있었음에..., 사랑보다는 신뢰와 존경으로 부인을 대하는 제시는 어쩌면 셀린과 다시 재회하기 위한 긴 시간을 소설속의 셀린과의 만남으로 위로받아 왔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제시가 아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에서 마치 셀린이 미소 지으며 추는 듯 한 모습을 오버랩 시키는데 어쩌면 두 사람의 파리에서의 재회는 둘의 간절한 염원이 서로를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파리 셰익스피어 서점에서 저자와의 대화에서 두 사람의 재회를 영상에 담아내고 있는데 셰익스피어 서점은 영화 비포 선셋을 본 관객이 파리를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들러봐야 할 명소이다.

몇 년 전, 파리에 살고 있는 딸과 함께 영화에 등장하는 파리의 셰익스피어 서점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2층으로 올라가는 완만한 계단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관광객들의 방문 소감들이 인상적이었고 책방을 거닐며 재잘거리는 관광객들의 소음과 거리를 지나는 차량의 경적이 묘하게도 썩 어울리는 느낌을 받았었다.

현실에서 찾은 영화에 등장하는 서점에서 바라본 책방 내부의 풍경과 그 공간에서 제시와 셀린 두 사람이 나누었던 이야기들, 그 재회의 장소에서 회상하는 영화의 장면들은 어쩜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의 느낌을 전달 받은 듯 내게 짜릿한 전율을 선사했다.

영화에서 제시가 작가와의 인터뷰 장면에서 셀린과의 사랑을 회상하는 장면이 있는데 곁에 그를 바라보는 셀린이 있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체 그녀와의 소중한 사랑의 기억을 마치 셀린과 대화하듯 담백하게, 또는 선정적으로 느껴질 만큼 세밀하게 표현하는 장면에서는 제시의 솔직함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두 사람에게 그 장면은 지나가 버린 시간 속 다시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비엔나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던, 야속하게 끊어져 버린 인연의 비정함에 무너진 그들의 하룻밤을 다시 찾고 싶어 하는 둘의 염원이 잘 드러나 있다.

그 날 셀린의 하루는 제시만을 위한 온전한 날이었고 제시 또한 그날 이후 셀린을 다시 만나기 위한 오늘 이 순간을 기다리며 기억의 끈을 매 순간순간 붙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두 사람의 찬란했던 하루는 9년의 시간 동안이나 끊어졌다 다시 이어졌는데 서로를 애틋하게 그리워하며 각자의 마음속에 서로를 위한 작은 사랑의 방을 만들고 그 방을 지켜온 결실이 현실에서 두 사람의 극적인 조우를 만들어 냈는지도 모른다.

죽는 날까지 각자의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야 할 이야기들을 상대에게 전하는데 제시가 미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탑승시간은 서서히 다가오고 길에서, 카페에서, 셀린의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두 사람의 지난 9년 동안 서로에게 향했던 마음을 전하는데 시간에 쫒기는 두 사람의 사랑을 관객은 간절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

초단위로 줄어드는 두 사람에게 부여된 시간, 두 사람의 대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데..., 늘 그렇듯 사랑은 그렇게 여유롭지도 않고 소나기가 내린 뒤 하늘에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무지개처럼 야속하고 감질나기만 하다.

세느강 유람선에서의 단지 15분의 시간, 또 한 번의 이별을 앞둔 두 사람에게 보여 지는 노틀담의 풍경, 햇살에 빛나는 제시 얼굴을 기억에 담고자 애쓰는 제시의 모습은 사랑의 도시 프랑스 파리의 풍경마저 슬픈 기억으로 영상에 담긴다.

서로를 간절히 원하지만 서로를 붙들지 못하는 두 사람,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절제된 질서 속에 존재하는 고색창연한 파리의 건축물처럼 두 사람의 사랑은 관객의 간절한 응원을 그렇게 외면하며 마지막으로 치닫는다.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 사랑의 완결인지, 사랑의 아름다운 기억을 마음으로만 기억하는 것이 사랑의 완성인지, 끝내 영화는 답을 보여주지 않는데 그들의 하룻밤의 사랑은 9년 후에도 따뜻한 찻잔에 깊은 향기와 사랑을 품은 캐모마일 차처럼 그렇게 미완의 결론으로 남는다.

관객에게 보여지는 둘의 만남은 한쪽만의 사랑이 아닌, 비록 함께 할 수는 없었지만 서로에게 온전한 사랑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해피엔딩을 바라는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다.

'천사여 고향을 보라.'에서 토마스 울프는 세상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 세상이란 것은 어디에도 없어 진! 어디에도 말이야. 네가 너의 세상이란다."
[비포 선셋(2004년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포스터]


한국타임즈 권차열 기자 chadol999@hanmail.net        한국타임즈 권차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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