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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단상] 고무신을 깁는 시인 백남이의 또 다른 詩作
2019. 04.30(화) 22:25확대축소
[이우송 신부(성공회)/살림문화재단 이사장/종교미술평론가/본지 고문]
-고무신을 깁는 시인 백남이의 또 다른 詩作-

[이우송 신부(성공회)/살림문화재단 이사장/종교미술평론가/본지 고문] 봄날 비에 젖은 전시장 앞 '초대전 꽃길…고무신 작가 백남이'라는 핑크빛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고무신 작가라니 별난 외도로세. 뭘까 궁금증을 가지고 '쓰임도예연구소'에 들어섰다.

전시장이라 하기엔 비좁지만 작업장과 함께하는 '한뼘 갤러리'로는 덧없이 예쁜 공간이다. 도자기 작품과 회화가 담긴 전시장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고무신들이 묘하게 어울려서 품격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효근 작가의 '꿈'이라는 작품에는 세네갈의 소금바다를 연상시키는 붉은 바다에 알 수 없는 무언가에 갇힌 소금배가 보인다. 붉은 바다 그림 밑에 흐푸른 바다속 뱃바닥을 드러내놓고 뒤집힌 세월호 같은 느낌의 작품이 작게 비수처럼 놓여 있고, 그 밑에 청바지로 장식된 꺼먹 고무신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백남이 작가는 세월호에 있었던 아이들에게 예쁜 고무신을 지어 주고 싶어서, 십대들이 신을 만한 사이즈의 고무신을 골라 그녀석들이 입고 여행을 떠났을 것 같은 청바지를 얹어서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고무신을 지었다고 한다.

백남이 작가의 첫 시집 '사랑은 없다. 기다리기로 하자' 중에 실린 '지뢰꽃이란다'에서도 아이들에 대한 슬프지만 뜨거운 시인의 시선을 읽을 수 있다.

지뢰꽃이란다.

세계 어느 도감에도 없는 별종 꽃
벌판의 들꽃이나 조약돌처럼 지천이던 지뢰알
철원의 아이들은 날마다 그 꽃을 터뜨리며 놀았다.
목숨 연명한 수복지구
민통선 너머 정물 같은 고향 바라만 보던
애비 애미 짓무른 눈가에
햇볕정책 끝자락에 몸져 눕거나
근근한 휴전의 땅마저 떠났다.
포성 없는 정적과 침묵이
오히려 불안했던 아이
정춘근은 음전한 시인으로 자라나
아직도 터지지 않은 지뢰알을 찾고 있다.
고향을 더듬은 또 다른 고향의 언어
만들어 터뜨리고 있다.

지뢰꽃 터뜨리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지뢰밭 위를 까르르 구르고 있는 것 같다.
속수무책인 어른들은 자신의 슬픔에 몸져눕고 아이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말도 건넬 수 없다.
아이들에게 고무신이라도 지어주고 싶었던 시인은, 손끝이 짓무르도록 바느질을 해서 꽃길 보내는 맘으로 말없이 세상에 내놓았다.

고무신 작가의 손을 거쳐서 꽃색을 두른 고무신들이 전시장에 놓이니 또다른 감회로 다가온다.
바닷속 전복껍질을 물고기 형태로 갈아 고무신에 기워 붙인 꺼먹고무신도 반지 고리와 같이 있다.
허연 고무신의 콧잔등을 중심으로 형형색색 꽃으로 피어난 이름 모를 꽃들은 봄비처럼 한땀 한땀 속살거린다.

손바닥 보다 작은 아기 고무신도, 물고기 서너마리쯤 담길 것 같은 아빠 고무신도, 말표 상표 선명한 엄마의 새 고무신도, 고무신 작가의 손길이 닿으면 꽃길위에 얹혀진 꽃배가 된다.
늘어선 고무신들 한켠에 잊혀져가는 세월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는 듯한 낡은 수첩이 놓여있어 그 속내가 드러난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물지 않는 생체기가 지뢰꽃처럼 알알이 피어나도 한땀 한땀 얹어서 꽃신을 지었다.
넋으로라도 만나고 싶은 세월호 아이들을 꽃길 위로 띄어 보내고픈 시인은 꽃배를 만들었다.
말 없는 말로 더 큰 감동을 안겨주는 고무신 작가가 된 시인 백남이의 작품은 다른 장르의 작가와 더불어 생소한 질료를 사용한 詩作이다. 글로 쓸 수 없는 또 다른 수단의 詩로 고무신을 안겨주었다.
[사진 : (좌로부터) 시인 백남이, 시인 박구경, 오미아 박사]

[원문바로가기] http://blog.daum.net/yiwoosong/13483824

한국타임즈 편집국 hktime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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