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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허새롬의 'Movie 나들이' (17)

퐁네프의 연인들(1991 레오스 까락스감독)
'아무도 나에게 사랑을 잊어버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2019. 10.24(목) 15:53확대축소
[허새롬 영화평론가]
[영화 읽어주는 사람=허새롬 평론가] 길거리에서 늘 자신의 죽음을 직면하며 부랑자로 살아가는 알렉스(드니 라방)는 세상의 시선에서 벗어나 한정된 삶에서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폐쇄된 세느강 여덟 번째 다리 퐁네프에 무거운 몸을 의탁한다.

수면 위를 지나는 배, 하늘과 에펠탑,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 사이를 헤매며 그림을 그리다 지치면 퐁네프다리에 낙엽처럼 뒹구는 또 한사람, 그녀가 바로 미셸(줄리엣 비노쉬)이다.

시력을 잃어가는 미셸은 사랑했던 남자친구를 찾아 헤매는데 부유한 집안의 딸로 부족함 없이 살아왔을 그녀가 찾는 사랑의 갈망은 간절하고 마냥 슬프다.

삶의 의욕을 죽음에게 던져주려는 알렉스는 퐁네프다리에서 미셸을 만나게 되는데 알렉스는 미셸을 통해 그가 꿈꾸는 열정적인 영원한 사랑을 찾고자 한다.

미셸을 향한 알렉스의 진실하고 애잔한 사랑은 때로는 용광로처럼 뜨겁지만 유리잔처럼 쉬이 깨질 듯 불안하기만 한데 두 사람의 불안정한 사랑에서 보여주는 쾌감이 사람들의 내면에 감추고 억눌린 본능을 일깨우게 한다.

퐁네프의 연인을 보는 관객의 느낌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체념이자 단념을 각오하며 보는 영화이다.

미셸에게 그토록 영원할 것만 같았던 줄리앙과의 사랑은 그녀를 길거리로 내몰았고 단 한번만 이라도 그를 볼 수 있다면 멈출 것 같은 사랑에 대한 집착은 그와의 추억들을 그림으로 남겨 가는데 더 이상 눈에 담을 수 없는 그녀의 사랑은 마음에 깊은 상처로 새겨진다.퐁네프다리는 두 사람에게 파리의 칼바람을 막아주는 아늑한 집처럼 포근하지만 때로 간헐적으로 변화하는 미셸의 기복이 심한 감정처럼 마치 다리를 중심으로 세상에서 단절된 그들만의 별도의 공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 사람이 가진 편견의 차이를 극복하는 사랑의 과정이 보는 이에게 가끔 미간을 흐리게도 하지만 미셸이 가끔씩 보여주는 작은 미소가 아름답기도 하다.

신분, 사상, 관객의 취향을 무시한 그들의 파격적이지만 원시적이고 순수한 사랑 앞에서 잠시 프랑스인들이 사랑을 풀어내는 방식을 발견할 수 있는데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기복이 심한 감정의 표현들이 파격적이며 거칠게 느껴지기도 한다.

퐁네프다리에서의 둘의 사랑은 추위와 배고픔을 수반하지만 알렉스의 마음은 온통 미셸을 향할 뿐, 미셀을 위한 일이라면 그녀의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주는 알렉스는 미셸을 위해 골동품 가게에서 라디오를 구입한다.

그런 알렉스를 바라보며 미셸은 과거의 남자 줄리앙과 사뭇 다른 사랑을 느끼지만 그의 사랑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알렉스는 미셸을 곁에 둘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두려워하지 않는데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알렉스에게는 미셸이 희망이자 기쁨의 대상이 된다.

알렉스의 사랑은 시력을 잃어가는 미셸의 눈을 대신하는 지팡이가 되고 실연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진통제가 되지만 결국 둘은 3년 뒤 크리스마스의 만남을 기약하고 서로에게 이별을 고하게 된다.

3년의 시간이 흐른 후 현실에서 살아가게 된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는데 둘은 끝도 없이 흘러가는 세느강 위 배위에서 서로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둘은 영원한 사랑에 갈증으로 아파했던 슬픈 기억과 늘 죽음과 직면했던 과거의 아픈 기억을 세느강에 날려버리고 둘만의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겉치레에 내면을 빼앗긴 젊은이들에게 퐁네프의 연인들은 가장 원시적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가을의 쓸쓸한 별자리만큼 비록 빛나지 않지만 각자의 방법으로 사랑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이들을 응원한다.
['퐁네프의 연인들' 영화 포스터]


한국타임즈 권차열 기자 chadol999@hanmail.net        한국타임즈 권차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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