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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허새롬의 'Movie 나들이' (23)

'엘리자의 내일' (2016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
눈과 표정의 힘은 혀로 말하는 것보다 위대하다
2020. 03.16(월) 16:26확대축소
[허새롬 영화평론가]
[영화 읽어주는 사람=허새롬 평론가] 중요한 부분을 강조할 때나 분노를 억제하며 작은 목소리로 상대에게 던지는 말들 속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들어있다

젊은 시절 루마니아의 개혁을 위해 투쟁에 나섰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의사 로메오(아드리안 티티에니)는 외동딸 엘리자(마리아 빅토리아 드라구스)가 자유로운 환경에서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기를 바라는 딸 바라기 삶을 살아간다.

로메오는 의사로서 성공한 삶을 살아가지만 엘리자를 위해 엄마가 해야 할 주부의 역할까지 종횡무진 해 낼 정도로 극성을 보이는데 딸의 미래를 위해 잠시도 그녀에게 시선을 놓지 않는 그에게서 극성스런 한국 엄마를 보는듯하다.

과한 것은 모자라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딸과 아버지의 관계는 엘리자가 사춘기를 맞으며 더욱 아슬아슬하게 전개되는데 그럼에도 아버지는 언제나 화를 누그러뜨리며 잔잔한 호수처럼 평화로운 가족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로메오는 외동딸이 자신이 이루지 못한 잃어버린 꿈을 대신 이뤄주기를 기대하는데 아빠로서의 철저한 준비로 딸의 미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한다.

로메오는 아내 마그다(리아 부그라르)와 함께 부부로서 한 공간에서 살아가지만 자신의 꿈을 실현해줄 딸을 바라보며 남편보다는 아빠의 삶에 치중하며 살아가는데 남편의 역할은 늘 외출중이고 둘 사이의 골은 깊게 파이고 파여 오로지 딸과 관련한 짧은 대화가 부부의 관계를 이어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로메오 가족에게 불행이 닥치는데 영국유학을 위한 중요한 시험을 앞둔 딸 엘리자가 납치와 성폭행을 당할 뻔한 사고가 발생하고 시험을 잘 치러야 하는 엘리자를 위해 로메오는 그동안의 정직한 삶을 포기하고 부정과 타협하는 일을 저지르게 된다.

젊은 시절 루마니아 정부군과 싸워 개혁을 이루려 했던 로메오는 억눌려온 분노의 싹을 터트리듯 엘리자를 위해 결국 정직하지 못한 나쁜 아빠의 길을 걷게 된다.

딸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려는 엄마 마그다와 다르게 로메오의 집착은 도를 넘게 되는데 딸의 납치사건을 추적하고 딸의 출세를 위해 노력하는 로메오의 헌신은 정작 당사자인 엘리자의 숨통을 조이고 결국 아버지의 집착에서 딸은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러는 과정에서 딸 엘리자는 아버지에게 숨겨둔 여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그녀는 엄마에게 외도사실을 알리면 시험을 보겠고 알리지 않는다면 시험을 보지 않겠다며 당돌하게 아빠를 협박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딸에게는 자신의 실패한 삶 대신 최선의 조건을 제공함으로서 성공한 삶을 이루게 하려는 아빠의 헌신을 엘리자는 알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가족을 떠나는 삶보다는 가족과 고향, 남자 친구와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데 세상의 모든 부모와 자식이 마주하는 대립과 서로 어긋난 기대와 실망의 모습이 영화에서 그려진다.

젊은 시절 그토록 갈망하던 올바른 세상에 대한 로메오의 기대는 그가 부모가 되면서 결국 세상에 절망하고 타협하는 모습으로 변질되고 마는데 로메오의 변해가는 모습은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딸을 위해 현실과 타협하고 자신이 누리는 모든 걸 버리는 아버지의 삶이나 그런 아버지의 기대와는 다르게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서는 인생을 선택하려 한 딸 엘리자의 모습을 지켜보는 관객은 무거운 질문 앞에 놓인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행복의 기준은 무엇인가?

엘리자의 아버지 로메오는 왜 그토록 딸이 자유로운 곳으로 가기를 바라는 것일까?

남들이 바라는 성공한 삶을 이루고도 정작 자신은 딸을 위해 반쪽 인생을 살아가는 로메오의 이중적인 삶을 세상의 부모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한국타임즈 권차열 기자 chadol999@hanmail.net        한국타임즈 권차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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