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K컬쳐와 존재의 회복
| 2025. 09.18(목) 1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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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날이갈수록 위상이 높아진 K컬쳐의 위상에 경외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경제적 효과나 국가 위상처럼 숫자로 환산되는 가시적 성과 때문이 아니다. 어째서 K팝이 전세계적으로 흥행을 타고 그것을 너머 K컬쳐라는 생활, 문화의 영역에까지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일까? 필자는 그 이면엔 현대인의 결핍된 무엇가를 회복시킨데에 있다고 본다.
아주 먼 옛날, 음악이란 고대 원시인들이 그들 공동체 안에서 '어떠한 것들'을 자신의 고유한 악기인 '성대'를 울림으로 흉내내면서 그것을 감각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고정적인 것을 성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의 포스트 모더니즘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반복은 보편성과 다르다"고 한다. "반복은 보편성에 맞서는 특이성이며, 차이를 긍정하는 특이성"이라 말한다. 그리하여 같은 노래임에도 그들의 반복되는 노래들은 각각의 실존적 희노애락, 자연에 대한 경외, 공동체의 정신, 즉 존재의 외침(Le cri)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을 자신의 귀로 들으며 자신을 감각(sensation)한다. 그것이 바로 '노래'이다.
존재가 상실된 현대의 '노래'
그렇지만 현대에 와서 그 '노래'는 기술 발전과 상업화에 힘입어 음악으로써 시장을 이루고, 스타와 팬덤을 통해 음악은 하나의 미디어 소비로 전환되었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분법 속에 '나뭇가지'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하나의 스타를 통해 상품화 되어진 대중음악은, 대량 생산되고 복제되며, 그때 그때의 유행을 타는 상품이 되었다. 이제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 앱을 실행하면 바로 소비할 수 있는 구조로 변한 것이다. 그 음악들은 모두 같은 것이며, 그 안에서 자기존재는 비춰지지 않고 감각되어지지도 않는다. 어느새부터인가 공동체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감각시키는 노래가, 그 존재를 상실한 개인이 그저 듣는 소비만을 하는 파편화된 상품, 노래의 존재는 미디어 기업의 것으로 독점돼버린 것이다. 그렇게 음악으로부터 인간의 존재, 노래로부터 인간은 '소외'되었다.
K팝과 노래의 회복
그러나 이런 때에 K팝이 등장하게 된다. K팝 그 자체는 엘리트적이지 않고 누구나 즐겨부를 수 있으며 자신도 그 K문화의 일원으로서 소비하고 향유한다. 누구나 그 K문화의 공동체의 일원일 수 있다. 이것은 모든이들이 반복적으로 향유하고 그 수많은 성대들로부터 소리침 가운데에 발생한 미세한 '차이(différence)'로 인함이다.
그로인해 자기 자신만의 경험으로 재탄생하고 자기 자신이 k팝의 일원임과 동시에 소비자이며 주체적인 향유자임을 깨닫는다. "반복은 결코 동일한 것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반복 속에서 언제나 차이가 발생한다."라 말했던 들뢰즈의 말 그대로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따라부르는 이들의 것이다. 자신의 성대로 K팝을 부르고 K팝의 현장에서 그것들은 스타나 문화를 '재현'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향유라는 새로운 다름이며 그것이 바로 개개인의 존재를 되찾는 K컬쳐의 원리이다.
K공동체의 회복과 그 미래
그래서 K컬쳐는 들뢰즈가 말하는 리좀(rhizome)과 같다. 그것은 시작도 끝도 없고, 중심도 없는 네트워크이며, 모두가 그 안에서 자기 존재를 감각하는 탈중심적 공간이다. 들뢰즈가 말하는 리좀은 "시작도 끝도 없다. 그것은 언제나 사물들 사이, 중간, 사이-존재, 간주곡 속에 있다." 이처럼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시작과 끝의 관계가 아닌 K컬쳐의 본령은, 파편화된 사회를 다시금 K문화로 공동체로서 리좀으로 묶게 만든다. 이는 어느누구도 독점하지 않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외국에서 만들어진 K문화 애니메이션같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K문화를 귀중하다는 이유로 '우리의 것, 우리의 상품, 우리들의 돈'같은 것으로 K컬쳐에 대한 몰이해와 피상적인 상업적 접근이 여전하다면, 그것은 리좀의 중심화이며 생산자와 소비자를 분리시키는 소외를 일으킨다. 그래서 다시 K컬쳐를 향유하여 자기존재를 되찾던 이들은 다시 파편화 되어 존재를 잃어버린 피폐한 현대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K문화를 더욱 진흥시키겠다면, K문화를 전세계인이 향유할수 있게끔 할 수 있는 플랫폼의 마련이 매우 시급하다. 그렇지 않고서 단지 K컬쳐를 상업적 접근이라는 근시안적 접근을 한다면 그것은 다시금 노래로부터 인간의 소외를 일으켜 더이상 경이롭지 않고 한시대의 유행이라는 결말을 맞게될 것이다.
한국타임즈 편집국 hktimes1@hanmail.net $gisa_ttl="%5B%ED%8A%B9%EB%B3%84%EA%B8%B0%EA%B3%A0%5D+K%EC%BB%AC%EC%B3%90%EC%99%80+%EC%A1%B4%EC%9E%AC%EC%9D%98+%ED%9A%8C%EB%B3%B5"; ?>


Update 10.17(토) 1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