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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마을, 연해주 독립운동가 마춘걸 선생 재조명

고려신문과 공동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사업'…스물여섯 번째 인물 선정
이만전투 영웅에서 스탈린 대탄압 희생까지…굴곡진 삶 재조명
2026. 07.12(일) 06:29확대축소
[러시아 문서보관국의 마춘걸 개인문서에서 발굴 사진=유스베틀라나]
[한국타임즈 김혜경 기자] '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공동 추진하는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 및 지원사업'의 스물여섯 번째 인물로 독립운동가 마춘걸(1902~1938) 선생을 선정해 그의 생애와 항일무장투쟁을 재조명한다고 12일 밝혔다.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1902년 서울에서 태어난 마춘걸 선생은 일제강점기 연해주와 만주 일대에서 무장투쟁과 독립운동 조직 활동에 헌신한 인물이다.

자유시참변 이후인 1921년 8월 군비단 군사부는 연해주 이만(현 달네레첸스크)에서 회의를 열어 조직 명칭을 '고려혁명의용군'으로 바꾸고 3개 중대 체제로 개편했다. 당시 마춘걸 선생은 한운용이 지휘하는 제2중대 제1소대장을 맡아 전선에 투입됐다.

같은 해 12월 벌어진 이만전투에서 마춘걸이 속한 제2중대는 모로봉에서 러시아 백위파를 격퇴한 뒤 이만 정거장으로 진격해 주둔 중이던 백위파의 항복을 받아냈다.

하지만 곧 무라비요프에서 출동한 수천 명의 백위파 증원군이 몰려오면서 전세가 급격히 불리해졌다. 제2중대는 끝까지 항전하며 백위파 600여 명을 사살했으나 탄약이 바닥나 결국 철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중대장 한운용을 비롯한 대원 46명이 전사했고, 마춘걸 선생도 온몸에 17곳의 총창과 자상을 입은 채 쓰러졌다.

전우들의 시신 더미 속에 묻힌 그는 가까스로 확인사살을 피했다. 밤이 깊어서야 의식을 되찾은 마춘걸은 백위파가 다른 전선으로 이동한 틈을 타 부상당한 다리를 끌고 이만의 한인 농가를 찾아가 응급치료를 받았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뒤에도 동포들의 만류를 뒤로하고 다시 대한의용군 본대를 찾아 나섰다.

1923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최계립 등과 함께 무장단체 '적기단'을 조직해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적기단은 동녕과 목릉 등 북만주 일대에 지단을 두고 활동했으며, 마춘걸 선생도 조직의 주요 인물로 참여했다.

1925년에는 모연대장으로 임명돼 간도와 국경지역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했다. 그러나 같은 해 발생한 '김군삼 저격사건'을 계기로 중국 관헌의 탄압이 거세졌고, 활동을 이어가던 적기단은 1926년 결국 해산됐다.

이후 마춘걸 선생은 레닌그라드 국제사관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뒤 소련군 제145 카스트롬 사격부대 부대장으로 복무했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 대숙청 과정에서 간첩 및 반혁명조직 혐의로 체포됐고, 이듬해인 1938년 1월 최고형을 선고받고 처형됐다.

억울한 희생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바로잡혔다. 1957년 소련 군사법원의 재심을 통해 무죄가 인정돼 명예를 회복했으며, 대한민국 정부도 여러 차례 심사와 재심 끝에 그의 항일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해 201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이어 2020년 10월 주러 대한민국대사관에서 열린 전수식에서 3대손 마빅토르 씨가 훈장을 전달받았다.

하지만 선생의 후손들은 아직 완전한 명예회복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증손녀 유스베틀라나 씨와 그의 자녀들은 국내 입국한 후 현재 경기 남양주시에 거주하고 있으나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공식 인정받지 못해 특별귀화 대상에서도 제외된 상태다. 이들은 안산지역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후손 인정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결론을 얻지 못하고 있다.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선조는 뒤늦게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지만, 그 후손들은 여전히 선조와의 혈연관계를 입증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받기 위한 긴 기다림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 광주 고려인마을은 고려신문과 함께 해외에 흩어진 고려인 독립운동가와 후손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역사 속에 묻힌 항일투쟁의 기록을 복원하고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독립운동사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한국타임즈 김혜경 기자 sctm01@hanmail.net        한국타임즈 김혜경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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