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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으로 보는 세상] 허새롬의 '세상 나들이' (4)

일본여행기[4] 고통의 시간이 멈춘 공간 '고베 메모리얼파크'
2019. 05.15(수) 14:15확대축소
[허새롬 작가]
[허새롬 작가] 사람에게 기억은 기쁨과 슬픔을 함께 저장하고 있는 창고와 같다.

기억은 와인창고에서 꺼낸 달디 단 포도주 같기도 하지만 때로 기억은 어린 시절 들에서 뜯어 입에 대어본 싱아의 잎처럼 미간을 찌푸리게 만드는 아픔일 수도 있다.

고베 사람들에게 있어 메모리얼파크에서 회상하는 기억은 지진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곁에서 떠나보낸 상처가 마치 나무의 옹이처럼 남아있는 상징의 장소이며 이제는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이들과 만나는 장소, 남아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며 아픔을 치유하는 상징의 장소이다.

바다로 밀려들어간 부두와 방파제, 기울어진 가로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고베 메모리얼파크는 지난 1995년 1월 17일 05시 46분, 고베를 강타한 진도 7.2의 대 지진의 순간에 시간이 멈춰있다.

수천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도시의 모든 기반시설이 파괴된 그날의 순간을 잊지 않고 또 다시 같은 재앙으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한 교훈을 삼기 위해 조성된 메모리얼파크는 그날의 잊지 못할 참혹함을 마치 파노라마 영상을 보는 것처럼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도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고 지진의 공포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록 한낱 여행객으로 현장을 방문한 입장이지만 마치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공포심이 절로 우러날 뿐이다.

예전에 우연한 기회에 경주 감은사를 찾은 적이 있었는데 절에 도착해 휑하니 절터만 남아있는 그 황량함에 잠시 여행에 대한 기대를 도둑맞았다는 느낌이 든 적이 있었는데 감은사가 담고 있는 속 깊은 호국의 의미를 알고는 이내 숙연한 느낌을 받았었다.

고베 메모리얼파크에서도 언뜻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우뚝 솟은 욕심을 잠시 내려놓고 살아 있음에 대한 겸손함을 배우게 하는 시간이었는데 때로는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도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언제 분출할지 모르는 화산을 품에 안고 늘 지진을 염려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에게 주어진 오늘이 마치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후회 없이 살아가야 함을 배우는 갚진 경험이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편리를 쫒아 숨 가쁘게 살아야 하는 21세기에 느리게 적응해도 뒤쳐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나라가 일본인 듯 하고 가까우면서도 먼 섬나라 일본을 바로 곁에서 차분하게 바라보는 시간이 이번 여행이었다.

우화에 나오는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처럼 결국 욕심 부리지 않고 조금씩 쉼 없이 천천히 거북이처럼 그렇게 나아가는 일본인들을 어떤 사회학자는 ‘온천물에 발을 담그고 움직이지 않는 고양이와도 같다.’ 고 평했다고 한다.

고베항을 떠나 바로 인근에 있는 복합 상업시설인 쇼핑몰 '고베모자이크'를 찾았는데 동쪽에는 바다, 서쪽에는 운하가 있어 쇼핑보다는 주변 경치를 구경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더 흥미롭다.

시간에 쫓겨 고베의 아름다운 경치를 뒤로하고 고베의 석양 풍경으로부터 아쉬운 고별인사를 받으며 귀국길로 향하는 나그네의 마음에 아쉬움이 가득하기만 한데 동양에서 접하는 이국적인 유럽풍의 건축물들을 차창 밖으로 감상하는 것으로 여행의 갈무리를 하게 되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야속하기만 한데 여행지에서 친구들과 즐기는 마지막 저녁식사가 맛깔스러웠고 여행지에서 먹는 커피와 케이크 역시 공항으로 향하는 내내 그 여운이 남아있을 정도로 좋았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만 귀하고 예쁜 모습을 볼 수 있듯이 지금의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타인에게는 새로운 경험의 대상이며 그 누구에게인가는 나 자신이 타인에게 거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하는 여행이었다.

불쑥 짐을 챙겨 떠난 이번 일본여행을 통해 비로소 내가 일상에서 접하는 많은 것들이 감사함으로 내 마음에 들어와 두고두고 내게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고베 메모리얼파크 표지석. 사진=허새롬 작가]
[고베항 전경. 사진=허새롬 작가]


한국타임즈 권차열 기자 chadol999@hanmail.net        한국타임즈 권차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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