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임즈

[기자수첩]법정스님 다비식 단상
2010. 03.15(월) 15:13

이현남 기자 / 어제(13일) 법정스님의 다비식이 있었다. 다비식을 끝낸 오후에는 비가 내렸다. 모든 것을 깨끗하게 씻고 가시라는 뜻으로 내리는 것이라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엄중한 봄비를 보면서 20년도 훨씬 전 그가 어느 신문에 피력한 여성관이 불현듯 생각났다.
<여자란 아름다워야 한다. 항상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자는 신속 정확히 속물이 되고 말 것이다.>

가만히 뜯어보면 여성에게만 국한된 것이라기보다는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말이라 생각된다. 자기를 개발하고 가꾸지 않으면 결국에는 꽃처럼 시든 존재가 될 것이라는 말이 언제나 젊은 날의 채찍이 되어 분발하게 만들어온 것 같다.

젊은 인생은 꽃과 같고 아이디어는 샘솟 듯 맑고 청아하다. 가치관은 그때 확고히 세워지게 된다. 나이가 든 지금, 젊었을 때의 가치관이 그대로 지주가 되어 ‘내 생을 이끌어왔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 후로는 연륜일 것이다. 사악한 생각을 하지 않고 언제나 남을 먼저 배려하면서 곧은 마음으로 인생을 다스려 나간다면 얼굴에는 곱게 늙은 흔적이 남게 될 것이다. 배려하는 마음은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고 겸손함과 온유함이 곁들여졌을 때 비로소 나올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배려는 이기심을 버린 자기양보이며 나보다 타인이 잘 되기 위한 희생이다.

내 그릇이 빌 때까지 베풀다 보면 베푼 것 만큼 내 그릇은 차오르게 되어 있다. 내가 많이 가지려 하기보다 늘 베풀고 사는 것이 곧 나를 돕는 것이고 나중에는 큰 그릇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절대불변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법정스님은 무소유로 일관하면서 내가 남긴 저작들은 다시 출판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피안의 세계로 떠나갔다. 하지만 남긴 저작들은 길이 물려져 널리 후손들에게도 영향을 끼쳐주어야 할 것인데 다 버리라는 유언은 잠시 생각해 보아야 할 여지가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이럴 때 고민을 하게 된다. 스님의 유언을 따라 만인의 재산이 되어야 할 가치들을 깡그리 잠재워야 할 것인지. 아니면 유언이 그렇다손 치더라도 가치관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는 저작들을 살려내 후손과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주어야 할 것인지.

스님은 가셨다. 무소유로 일관하셨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도 생각해 보셨으리라 믿는다. 버리는 것이 곧 배려임을 스님은 아셨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시는 무엇인가. 내 한 몸 갔지만 나로 인해 퍼지는 큰 파장은 역시 큰 보시가 될 것임에 틀림없는 일일 것이다.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항간에 떠도는 유언은 조금만 믿어야 할 것이다. 세상에 행복한 빛을 주시고 가신 만큼 남아있는 중생들에게도 필시 밝은 빛을 남기고 가셨을 것임이 분명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 한다면 피안의 세계에서 다시 한번 재고해 주실 것임을 간곡히 부탁드린다.

스님은 무소유로 가시고 스님이 남긴 저작들을 볼 수 없어 많은 중생들이 해탈의 경지에 들지 못한다면 이것도 스님에게 남아있는 업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타임즈 이현남 기자 wiseman1@hanmail.net 한국타임즈 이현남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